얼마 전 좀 서늘한 경험을 했습니다. 몇 주에 걸쳐 붙여놓은 콘텐츠 자동화 파이프라인을 어떤 분에게 설명했더니 "아 그거 저도 주말에 만들어볼게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기분이 나빴던 게 아니라, 그게 사실이라서 서늘했습니다. 요즘은 정말 주말이면 만들어집니다. 제가 못 하던 걸 AI가 대신 해주는 시대라는 건, 반대로 남들도 저와 똑같은 걸 똑같은 속도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저는 코딩을 못 하는 상태로 AI를 동업자처럼 고용해 1인 회사를 굴리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주로 "어떻게 만드느냐"를 다뤘는데, 만드는 게 쉬워질수록 진짜 질문은 다른 쪽으로 옮겨갑니다. 만드는 게 더 이상 어렵지 않다면 1인 기업 경쟁력은 어디서 나올까. 오늘은 이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실행이 싸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나
AI 모델을 돌리는 추론(inference) 비용은 2022년 11월부터 2024년 10월 사이에 수백 배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같은 성능을 내는 데 드는 돈이 2년 만에 몇백 분의 일이 됐다는 뜻입니다. 이건 저 같은 사람에게 축복입니다. 예전 같으면 개발자 한 명 월급도 못 감당했을 사람이 지금은 에이전트 여러 대를 매일 돌립니다.
문제는 그 축복이 저한테만 온 게 아니라는 겁니다. AI 스타트업 실패 사례를 모아둔 한 데이터베이스는 2023년 이후 300건 넘는 붕괴 사례를 추적했는데, 가장 큰 사인 세 가지가 이렇습니다. ①파운데이션 모델 회사가 그 기능을 그냥 기본 탑재해버려서, ②매출이 붙기 전에 컴퓨팅 비용이 먼저 타버려서, ③아무리 봐도 자기만의 데이터가 없어서.
첫 번째가 특히 무섭습니다. "AI에 뭘 얹어서 파는" 형태의 사업은 원본 모델이 다음 버전에서 그걸 기본 기능으로 넣는 순간 통째로 사라집니다. 국내 상황도 결이 비슷합니다. 통계상 1인 창조기업은 2023년 기준 116만 개를 넘겼고 한 해에만 15% 넘게 늘었다는 집계가 있습니다.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는 건 내 옆자리에도 백만 명이 앉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가 해자라고 착각했던 것들
부끄럽지만 "이게 내 강점이지" 하고 여겼던 것들을 하나씩 검증해봤습니다. 대부분 탈락이었습니다.
"자동화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다" — 코드는 AI가 짰습니다. 다른 사람도 AI에게 시키면 됩니다. 탈락.
"남들보다 먼저 시작했다" — 먼저 시작한 것과 지켜지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실패한 창업자들이 가장 흔히 하는 착각이 바로 "빨랐다=안전하다"였다고 합니다. 탈락.
"기능이 많다" — 기능은 이제 복제 원가가 거의 0입니다. AI가 기능 해자를 죽였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탈락.
여기서 중요한 건 좌절이 아니라 방향 전환입니다. 복제 원가가 0에 수렴하는 것들에 시간을 쏟는 대신, 복제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들로 자원을 옮기면 됩니다. 다행히 그런 게 아직 몇 개 남아 있습니다.

2026년에도 복제가 안 되는 것 다섯 가지
여러 분석을 종합하면 대체로 이 다섯 가지로 수렴합니다.
1. 쌓여야만 생기는 데이터. 하루 만에 만들 수 없고, 쓰면 쓸수록 좋아지는 종류의 자산입니다. 제 경우엔 매일 쌓이는 발행 기록과 그에 따른 반응 데이터가 여기 해당합니다. 어떤 제목이 먹혔고 어떤 톤이 안 먹혔는지는 남의 AI가 모릅니다.
2. 워크플로 깊이. 남의 일상 업무 안에 깊이 박힌 도구는 갈아타는 비용이 큽니다. 반대로 "필요할 때 한 번 켜는" 도구는 언제든 버려집니다.
3. 유통과 발견성. 2026년에는 AI 자체보다 유통이 더 강한 해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한 조사에서는 응답자 대다수가 이미 'AI가 내 콘텐츠를 찾아주는가'를 유통 우선순위로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4. 취향과 관점. AI는 무한히 만들 수 있지만, 무엇을 만들지 않을지는 못 정합니다. 매일 열다섯 개 후보 중 세 개를 고르는 그 선택이 결국 채널의 성격이 됩니다.
5. 신뢰와 관계. 가장 느리게 쌓이고 가장 빨리 무너집니다. 그래서 가장 복제하기 어렵습니다.
흥미로운 건 비개발자에게 오히려 유리한 항목이 섞여 있다는 점입니다. 도메인 접근성 — 특정 업계 사람들과 실제로 얘기해본 경험 — 은 엔지니어링 중심 경쟁자가 갖기 어려운 자산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코딩을 못 해서 대신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면, 그게 이제 자산 쪽에 기록됩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 바꾼 것
거창한 전략 대신 세 가지만 손봤습니다.
첫째, 매일 발행을 '노동'이 아니라 '적립'으로 다시 정의했습니다. 글 하나가 그날 조회수로 끝나면 소모입니다. 하지만 주제별로 정리돼 서로 링크되고 나중에 전자책이나 강의의 재료가 되면 그건 자산입니다. 같은 노동, 다른 회계입니다.
둘째, 수익화 구조를 다시 봤습니다. AI 기능을 넣은 소프트웨어 기업 중 상당수가 그 기능에 별도 과금을 못 하고 있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AI를 썼다"는 사실 자체는 이제 가격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 AI 1인 기업 전자책 소개 문구에서도 'AI로 만들었다'는 표현의 비중을 줄이고, 독자가 실제로 얻어가는 결과 쪽으로 문장을 옮기는 중입니다.
셋째, 실패도 그대로 씁니다. 자동화가 이틀 멈춘 얘기, API가 성공했다고 거짓말한 얘기를 그대로 올렸습니다. 잘된 것만 올리는 채널은 AI가 하루에 백 개 만들 수 있지만, 진짜로 굴려본 사람의 실패 기록은 못 만듭니다. 신뢰는 거기서 생깁니다.
마치며
AI가 실행을 공짜로 만들었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정확히는, AI가 실행의 가치를 0에 수렴시키고 대신 판단·축적·신뢰의 가치를 끌어올렸습니다. 예전에는 "만들 줄 아느냐"가 경쟁이었다면 지금은 "뭘 만들지 고르고, 그걸 얼마나 오래 쌓았고, 사람들이 당신을 믿느냐"가 경쟁입니다.
솔직히 이건 1인 기업에게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앞의 세 가지는 사람 수로 이기는 항목이 아니거든요. 코딩 못 하는 사람이 AI를 열 명 고용해 회사를 굴리는 게 가능해진 시대에, 남은 승부처가 하필 '오래 붙어 있기'와 '거짓말 안 하기' 라면, 그건 해볼 만한 게임입니다.
오늘도 하나 발행합니다. 하루치 적립입니다.
작성: Art Gourmet